오늘의 선거 운동이 끝나고, 남았던 일정은 유세연습. 새내기스러운 율동 동작을 배울 엄두가 나질 않아 도망치듯 학생회관에서 나왔다. 사회과학 세미나를 하러 가던 친구를 만나 잡담이나 하며 집에 가고 있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그 친구, 전화를 받은지 얼마 되지 않아 수화기에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말에 욕이 섞여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 친구에게 자제하라는 신호를 보냈지만, 그는 나에게 어색한 웃음만 흘려보내며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다.
곧 통화는 끝났고, 나는 친구에게 무슨 일인지를 물었다. 우리 시골집 월세가 10만원인데, 얘가 대학 지원서에는 집에 딸린 가게까지 해서 월세 20만원이라고 썼단 말야. 그것도 차상위 계층 전형으로 지원한건데.
친구가 설명을 다 마치기도 전에 전화가 다시 걸려왔고, 친구는 다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소리지르는 친구가 부끄럽지도 않았다. 그의 욕설을 말리지도 못했다. 앞뒤가 안 맞는 말들이 실타래처럼 얽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도, 뭐가 그리 무거워서인지 내 혀는 말을 내뱉지 못했다.
나는 정말 월세가 10만원인 집에서 사는 사람도 그 전형에 지원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아무리 가게가 딸려있다 해도, 월세 20만원인 집에서 사는 사람이 그 전형에 합격하는 것이 불공정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나는 내 친구가 동생이 서울에 올라올 수도 있다며 기뻐했던 것도 안다. 서울에서 동생과 같이 살게 되면 생활비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 일로 동생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할 수 없게 되면, 내 친구는 더 무거운 짐을 안고 살 것이다.
내가 다니는 학교에는 주로 돈이 많은 집의 자식들이 입학한다. 강남 출신이거나, 지역 유지 출신이거나, 법조인, 고위공무원의 자제들, 가끔씩 '정말' 부자집 출신들. 뉴스에서나 볼 것 같은 특목고생들, 자립형 사립고생들, 심지어 외국에서 학교 다니다 온 사람들 다 어디갔나 했더니 여기 모여있었다. 그렇다고 평범한 집안 학생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고, 내 친구같은 가난한 집안 출신도 가끔씩 눈에 띈다. 그나마 과외를 할 수 있어서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그럼에도 내 친구처럼 집에서 지원을 거의 받을 수 없는 학생들은 살기가 정말 힘들다. 내 친구는 일주일에 네 번 과외를 간다. 이렇게 일을 하고 나면 수업을 따라가는 것도 만만치 않아서 친구는 더 많은 일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그것으로도 생활비를 대기가 벅차다. 그리고 그의 동생은 내년에 대학에 입학한다.
그렇다고 내 친구의 욕설이 정당하지는 않았다. 순진한 동생은 언니가 내뱉은 욕설에 크게 상처를 받았겠지. 정말 잘못한 것이 그의 동생이 아니라는 것은 나도, 그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장학금 한 번 받기 위해서, 내가 이렇게 못 삽니다-하고 구차한 설명을 늘어놔야 하고, 졸업하면 이러저러하게 경영에 기여하겠습니다-하고 자신이 꿈꾸지도 않는 미래를 읊어야 하는 이 사회가 정말 문제라는 것을 그도 나만큼이나 잘 알고 있다. 일 년에 100만 원 하는 고등학교 등록금을 면제받기 위해 우리 집 이렇게 가난해요-하고 말하는 것이 동생에게 얼마나 부끄러웠을지, 지원서 쓰는 일을 며칠이고 미루고 싶었던 것이 얼마나 이해할만한 심정인지, 그도 나도 모두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 친구를 막을 수가 없었다. 수화기에 소리치지마. 우리가 지금까지 배우고 행동한 게 결국 울지 말자고 하는 짓이잖아. 동생이 아니라 이 막되먹은 세상이 잘못된 건데, 왜 걔한테 화내는 거야. 그런 말을 하고 싶었는데, 도저히 말을 입 밖으로 뱉을 수가 없었다. 너도 알아서 화나는 거잖아...
지하철에 탄 후에 그는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일 있을 때는 생각을 말아야해. 이 신문에 나온 사람 내가 아는 선밴데 이런 일 했었구나. 그 선본 후보는 저번에 떨어지고 또 나왔냐? 응, 그래 하면서 의미 없는 말들을 듣고 있었지만-너도 나처럼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겠지. 몇몇 역을 지나고 나자 우리는 말이 없었다.
그는 저번 과제에서 김규항이 제안한 북유럽식 사회 디자인을 지지하는 글을 썼다 했다. 그래, 그럴 수도 있는데 왜 더 급진적인 글을 쓰지 않고? 그는 구걸해서 얻는 기부금이 아닌, 권리로 얻는 복지가 너무나 와닿았다 했다. 착한 부자들이 자선해서 받는 교육이 아니라, 교육받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교육. 불쌍해서 베푸는 적선이 아니라, 구걸이 아니라, 사람이라서 당연히 받는 권리. 20조 원 삽질 대신 양질의 일자리. 아프가니스탄인을 죽이는 폭탄이 아니라 돈 없는 사람조차 살리는 무상의료. 곤봉질과 방패질이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권리. 철거민을 불길로 내모는 권력이 아니라 스스로가 민중 자신인 권력. 나는 그와 북유럽 모델의 한계에 대해 토론하지 않았다. 그래, 그렇게만이라도 될 수 있다면-
나는 정치에 남겨둔 한 발을 도저히 뗄 수가 없다. 나는 이미 선악과를 입에 물었다. 눈을 뜬 이후 내 눈에 들어온 땅은 에덴동산이 아니라 황무지였다. 머지 않아 내 귀에는 신에게서 버림받은 망령들의 통곡 소리와 구원받은 영혼들의 성가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신심이 깊지 않아서, 진실을 알려준다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에 넘어갔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도 내 계약을 파기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신에게서 버림받은 것이 내 운명이라면, 가장 부정한 곳에서 버림받은 이들의 목소리에 함께하는 것 역시 내 운명이다. 내게는 다시 눈을 감을 용기도, 권리도 없다.
곧 나는 지하철에서 내렸다. 내가 빛으로부터 버림받았음을 다시 확인했기에, 내 심장은 수은이라도 담은 듯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