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다

무리했나, 일이년 동안 아픈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아프다
자다가 통증에 깬 것이 11시
갑자기 아플 때 흔히 그렇듯, 오늘 기분 참 이상하다 ㅎ

by 불량소년 | 2012/01/27 23:16 | 트랙백 | 덧글(0)

1월의 정리

이번 1월처럼 다채로운 때도 없었다. 추상적인 수학의 세계에서 구체적인 현실정치까지, 치밀한 이론으로 무장한 사람부터 이론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까지, 통제 없이는 굴러가지 않는 곳에서 무엇으로부터도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 나의 방까지 모든 것이 나의 배경이 되었다. 배경이 다양했기에 스스로를 돌아보기도 어렵지 않았다. 스스로를 파악하려는 큰 노력 없이도 나의 위치는 명확해졌다.
경제학을 주된 연구대상으로 삼는 구상은 고려대상에서 멀어졌다. 경제학을 공부하던 나는 시야가 좁아진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것을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경제학을 공부하는 친구는 학부때와는 달리 시야가 좁아진 자신의 모습을 이야기했다. 고도로 추상화된 세계를 탐구하는 일에 탐닉하다보면 현실과의 연결고리를 잃거나 현실의 극히 일부만을 다루는 데에 익숙해지기 쉽다. 내게는 정치적으로 피해야 할 일이고, 온전한 인식과 판단을 위해서도 피해야 할 일이다. 무엇보다 그것은 나의 다른 욕구를 배반하는 일이다. 나는 계속해서 경제학을 공부하겠지만 그것만을 공부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정치적 참여는 묻어둘 수 없다. 여태 계속해온 고민의 이론적 결론이, 현실정치에서 도출되는 결론이, 나의 양심이 정치로 나를 끌리도록 한다. 배우고 연구하려는 나의 욕구는 정치에 대한 욕구와 때로 협력하고 때로 충돌할 것이다. 둘 사이의 관계를 정립하는 일이 앞으로의 나에게는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둘 모두 나에게는 피할 수 없는 욕구라는 점이다. 그리고, 의식적 노력이 동반된다면, 둘은 분명 협력할 수 있는 관계에 있다.
나의 내면은 지금만큼 안정된 적이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 비교해보자면, 지금의 나는 내가 종교를 믿었을 때와 비슷한 정도의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다. 스스로에 대한 탐구는 이제 충분하다. 논리적인 언어로 적어두지 않았을뿐, 나는 나를 잘 알고있다. 나머지는 구체적인 사례가 생겼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구체적인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고 나는 그것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안으로 기울기보다, 오히려 나는 바깥으로 나갈 준비를 끝냈다. 어디에 적응하는 일도, 어느 상황에 적응하는 일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적응은 7년전의 적응보다 훨씬 차분한 적응이 될 것이다.
모든 정리는 끝났다. 이제는 길을 가면 되겠다.

by 불량소년 | 2012/01/26 09:34 | 돌아보기 | 트랙백 | 덧글(0)

변한 성격

우리는 자신을 투영할 대상 없이는 스스로를 볼 수 없다.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것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결국은 사람만한 것이 없다. 타인에게는 내가 아닌 자아가 있고, 타인으로서의 내가 있으며, 그들의 상호작용을 지켜보는 자기 자신이 있다.
작년에는 사람들과 만나는 일을 줄였던 탓에 내 안에서 일어난 변화를 확실히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오랜 기간 이어져 온 과정의 일부이긴 하지만 작년에도 내게는 분명한 변화가 있었다. 그간 깨닫지 못했던 그 변화의 내용은 1월에야 내 눈에 들어올 수가 있었다. 언제나처럼 나는 사람들을 만났고, 집에 들어가서야 나의 변화를 깨달았지만,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의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간편하게 확인해보고 싶을 때 가장 눈에 쉽게 들어오는 것이 유형화된 성격들이다. 평소같으면 혈액형을 묻는 질문을 받고도 실없다며 넘겼을 테지만, 이번에는 그렇게만 넘길 수가 없었다. 하물며 친구가 내게 다시 보여준 MBTI는 당연히 내 눈길을 끌었을 수밖에 없다. 16개의 유형으로 사람을 나눌 수도 없는 법이지만, 어느 정도의 공신력이 있는, 7년 전의 나를 잘 분석해줬던, 그것도 혈액형 성격의 네 배나 되는 유형들이라면 괜찮지 않은가?
진득하게 앉아서 검사를 마쳤는데, 생각지 못한 INFP가 나왔다. 혹시 정성이 부족했는지 몰라, 진심을 담아서 해야지. 지문을 잊을만한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해봐도 또 INFP. 몇 분을 혼란 속에서 보내다가 설명 그림 아래에 조그마한 글씨로 적힌 글이 눈에 띄었다. 유심히 읽어본다. 당신은 모든 성격 유형을 사용하지만, 몇몇 유형은 다른 유형보다 더 많이 사용합니다. 분명 가장 높은 선호도로는 INFP가 나왔지만, ENTP부터 INFJ까지 여섯 유형이 모두 70~80%범위 안에 있었다. 그 여섯 유형들의 설명을 읽어봤더니, 결국 모두 내 얘기 아닌가? 그렇다면 이 검사결과에는 의미가 없을까? 그렇게 짚어넘기기에는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검사를 하기 몇 일 전에 나는 내가 AB형이 분명하다는 말을 들었다. 나의 성격을 보면 관계가 매우 분명하여 다른 혈액형일 리가 '절대' 없다는 말을. 몇 일 후에 만난 내 친구는 내가 B형이 아니냐고 했고, 다른 친구는 당연히 O형일 것이라 했다. 드물지만 A형일 것이라는 사람도 종종 있다. 혈액형을 벗어나면 평가의 범위는 더욱 넓고 다양해진다. 합리주의자, 낭만파, 기분파, 심미주의자, 반골, 아나키스트, 모범생, 둥글둥글함, 쿨함, 소심함, 연애에 관심 없을 것 같다, 열정적으로 연애할 것 같다. 그런 판단을 한 사람들은 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텐데, 결국 합쳐놓고보면 이 사람들은 서로 모순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성격의 복합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순식간에 다중인격이 될 판이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생각하듯, 만일 그 사람들이 진실의 일부를 말하고 있다면 MBTI의 몇몇 유형이 내게 모두 맞아보이는 것도 이상할 이유는 없다.
나의 어릴적을 생각해보면, 나는 뿌리깊은 ENFP였다. 언제나 무언가를 확고한 태도로 주장해왔지만 언제나 이해받지는 못했다. 싸움을 피하지는 않았지만 한 시간도 되지 않아 화해를 하곤 했고, 결국 모든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려 했었다. 그런데 이해받지 못하는 주장을 하면서 모두와 친해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끊임없이 뭔가를 이야기했지만, 사람들은 내가 이야기하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의 세계에 사는 내가 옳고 나와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만도 없었다. 내가 분명 옳다고 믿었던 것들은 가끔 사실이었지만, 대개는 이성과 충돌했다. 나는 끝없이 내가 옳다고 주장했지만, 집에 들어와 혼자서 생각해보면 생각이 달라졌다. 내가 알고 있던 간단한 상식만 끌고 와도 알 수 있었듯 나는 틀렸고, 그들이 옳았다.
어려서부터 21살 무렵까지의 나의 성장은 언제나 이 고민과 맞물려있었다. 나의 머리 속에는 내가 분명하다고 믿는 나의 세계가 있는데, 내가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하려 하는 바깥 세계는 나의 세계가 모순투성이라 했다. 나는 당신들이 이해하지 못한, 나의 할 이야기가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내 앞에서 바깥 세계는 꿈쩍도 않고 있었다. 내가 끝없이 배워온 것은 세계가 바뀌기 전에 내가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머리 속에서 이룬 세계가 반드시 옳다는 법은 없다. 그것이 옳다 해도 현실과 연결될 수 없다면 그것은 나 혼자의 생각일 뿐이다. 오히려 강 저편 현실의 다리와 내 머리 속의 다리가 맞지 않는다면 움직여야 하는 것은 이 쪽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는 무슨 수를 써도 나의 세계는 닫힌 세계가 된다. 나의 언어가 아니라 그들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 직관으로 도달한 결론과 딱딱한 현실 사이에 다리가 필요하다. 상대방을 꼭 설득시켜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으며, 모든 사람에게 설득될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설득하기 전에 자신이 설득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야 하고, 그럴 용기를 가져야 한다. MBTI의 언어로 이야기 하자면, 나는 F에 대응하기 위해 T를 키워왔고, E를 보장받기 위해 I를 버릴 수 없었으며, N의 존재를 위해 S를 끄집어내야 했다. 어떻게 한 가지 성격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그래야만 했다면 나는 매우 부족한 생활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바깥 세계로 나가기 위해 자신으로 향하는 것은 얼마나 자연스러운 과정인가? 탄탄한 연결고리로 무장한 직관은 그렇지 못한 직관보다 더 높은 통찰력을 가진다. 생각하지 못하는 감정의 범위는 얼마나 좁은가? 판단하는 과정 없는 인식은 제자리를 맴도는 일일 뿐이다. 모든 것이 변화했을 때 나는 결국 다른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의 범위는 나의 변화에 따라, 경험에 따라, 점점 넓어져갔다. 건강한 변화였는지는 모르겠으나, 22살부터 26살까지 있어왔던 I강화, J강화의 경향도 따지고 보면 이 성장의 일부였다.
사람에게 기본적인 성격이 있다는 내 친구의 말은 옳다. 나도 나의 근본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있고, 나의 근본이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가을의 낙엽을 여름의 녹엽과 같은 것이라 말하지 않는다. 똑같은 원리가 우리에게도 적용되지 않는다면, 나는 나의 삶을 더욱 팍팍하게 느꼈을 것이다. 다행히 내 삶은 충분히 풍부해진 것 같다.

+빠뜨린 것들 중 주요한 연결고리가 있는데, 요약하자면 그런 성장이 다면성의 근원이라는 것
++이 글은 읽히기를 바라고 쓴 글이다

by 불량소년 | 2012/01/25 22:06 | 돌아보기 | 트랙백 | 덧글(0)

변한 성격?



학교로 돌아가면 다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나
일단은 약간 변한 듯

+돋보이는 것은 I의 강화와 P의 약화이다
조용하게 변한 생활양식과 행정업무, 경제학(특히 미시경제학)탐닉 등이 원인인 듯
공부에 적합해지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도제 생활에 적합해지고 있는 것일지도
사고반경이 좁아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듯
내가 원하는 것은 숲에서 나무를 빼내는 능력이지 숲의 일부를 보는 능력이 아니다

by 불량소년 | 2012/01/25 13:01 | 트랙백 | 덧글(0)

즐거운 1월

옮겨온 곳은 일도 적고
공부는 공부대로 하고
친구는 친구대로 만나고
자전거는 끝도 없이 달리고
게임 안 해서 시간도 많고
즐거운 1월이구나

by 불량소년 | 2012/01/25 00:13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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